읽은 책을 보관하는 이유

얼마전에 줏어 읽은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

앞쪽을 보니 목구라는 분이 이 책의 저자에게서

2015. 8. 29.날 이 책을 받았나 보다.

저자의 친필 서명이 들어있다.

그런데 버렸다.

버려진 책을 보니 생각나는게 있어 몇자 적어본다.

난 읽은 책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아니 버릴수가 없다.

왜?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건 기본이고,

책을 읽다가 중간중간 빈 여백에 일기를 쓴다.

어떤 날은 일기를 20번 정도 쓰는 날도 있다.

평범한 일기를 쓰기도 하지만 욕도 많이 쓴다.

책 읽다가 열받는 일이나 짜증나는 일이 생각나면

빈 여백에 적는다. 욕도 적당히가 아닌 아주 적나라하게 적는다.

차마 여기에 적기에 민망할 정도로.

그렇게 적고나면 마음이 풀리면서 잊어 버려진다.

이뿐만 아니다.

내가 납부하는 각종 세금이나 관리비, 신문대금 등의 영수증도

납부 후 적당한 여백에 붙여 놓는다.

왜?

나도 모른다.

무슨 가치가 있냐고?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

근데 이게 나중에 아주 나중에 50년정도 흐른후에,

혹은 나 죽고난 후에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게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지인들과 주고 받은 이메일 중 나한테 의미가 있는 것도

출력해서 붙여 놓는다.

이건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읽어보면 가슴이 따뜻해질 것 같아서다.

신문을 읽고 스크랩한 것들도 죄다 붙여 놓는다.

그래놓고 가끔 시간나면 다시 들춰보곤 한다.

유언도 종종 적는다.

죽을 때 갑자기 유언을 할려고 하면 생각도 안날 뿐더러

그 많은 유언을 다 하고 죽을수도 없다.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유언도 적어 놓는다.

그래서 내 마지막 유언은 벌써 정해져 있다.

매우 간단하다.

난 죽기전에 이 말만 딱하고 죽으면 된다.

“내가 봤던 책을 봐라”

나는 코딱지를 종종 후빈다.

무심코 코에 손을 넣었는데 왕건이가 걸리면

그렇게 시원하고 상쾌할 수가 없다.

그러면 그걸 책 여백에 붙인 후 스카치 테잎으로 덮고

아래쪽에 간단히 메모를 한다.

“애비의 오른쪽 코딱지이니 애비가 그립거든 한번씩 보거라.

너무 자주 보거나 쓰다듬다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거라”

책을 보다가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주면 그렇게 시원 할수가 없다.

그래서 종종 머리카락을 쥐어 뜯는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그 머리카락을 모아 책 여백에 스카치테잎으로 잘 붙여 놓는다.

그리고 역시 메모를 해놓는다.

“애비의 머리카락인데 나중에 유전자 기술이 발전하거든

복제하든지 해라”

아버님은 내가 8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도 별로 없고

내가 가진 유품이라곤 곰방대 달랑 하나뿐이다.

어머님은 2021년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님에 대한 것은 유품이 많기도 하지만

특히나 어머님 머리카락이나 예전에 내가 깎아드린

손톱도 내 어느 책 여백에 잘 보관되어 있다.

들춰보다보면 언젠가 발견될 것이다.

그때 느낌은 어떨까?

유족의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유품으로 보관하는 사람이

나말고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나한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머님이 쓰시던 물건들과 달리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어머님의 신체 일부나 마찬가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렸던 각종 그림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

기타 특이한 사항이 있는 것들도 죄다 붙여 놓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버려서 다시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나한테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다.

내가 남겨놓은 이런 유품들이 내 자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지금까지는 자식들에게 특별히 얘기한 바 없다.

다만 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할 뿐이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들의 몫!

남기는 건 나의 몫!

이렇다보니 300페이지 정도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이 500페이지 정도로 늘어나 있다.

배불뚝이처럼 두툼해져 있다.

위와 같은 사유와 여기에 적지 않은 몇가지 사유로

난 책을 절대로 버릴 수 없는거다.

이렇게 한지가 어언 28년이다.

그럼 그 많은 책은 어딨냐고?

매년 백만원씩 지급하면서 경기도 양평의

‘스토리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나만의 성이 완성되면 옮겨야 할 1순위 품목이다.

계획 중 하나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햇살이 잘 드는 나만의 집을 지어

집안을 온통 내가 읽은 책으로 장식한 후

한쪽을 통유리로 한 후

햇살이 잘 드는 어느날

창가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 시절의 책을 한권 꺼내 읽으면서

흔들흔들 흔들리면서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는거다.

얼마나 행복할꼬!

줄서 독서실 스터디카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천수로 52 .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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