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인가 실력인가?

오늘자 한국경제에 실린 사설인데

공감하는 바가 있어 전문을 올려본다.

[시론] 베팅인가, 실력인가

‘가나다’군 중복 지원 폐해 커

실력 중심의 선발 개편 시급

채선희 중앙대 교육학과 객원교수

지난달 말 정시(수능 위주 전형) 추가모집이 마무리돼 2025학년도 대학입시가 사실상 끝났다. 그런데 SKY대(서울·고려·연세대)의 무전공 선발에서만 851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특히 고려대의 한 전형에서는 36명 모집에 733명이 추가 합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합격 통보를 받은 733명이 연이어 등록을 포기한 결과다.

정시에서는 수험생이 ‘가나다’군에서 각각 한 개의 학과를 선택해 최대 세 곳에 지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복 합격이 불가피하며, 한 곳을 선택하면 나머지는 등록 포기로 처리된다. 대학은 빈자리를 추가 합격자로 채우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최상위권 대학부터 연쇄적으로 영향받는다. 결국, 일부 대학은 개학 직전까지도 최종 합격자를 확정하지 못하는 혼란을 겪는다.

‘가나다’군 제도는 1995년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학생의 선택권을 넓히고 특정 대학 쏠림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입시는 실력뿐만 아니라 지원 전략이 성패를 좌우하는 ‘게임’이 됐다. 학생들은 ‘안정-적정-소신 지원’ 전략을 두고 치열한 계산을 해야 하고, 이를 돕는 고액 입시 컨설팅 시장이 번창했다. 심지어 점수가 낮은 학생이 평균 합격선이 더 높은 학과에 붙는 사례도 발생하며, 불합격한 학생들이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최근에는 ‘스나이퍼 지원’이라는 전략까지 등장했다. 경쟁률이 낮은 학과를 찾아 자기 성적보다 훨씬 높은 대학에 도전하는 방식인데, 이는 입시를 사실상 도박으로 만든다. 수험생들은 다른 지원자의 선택을 예측하며 전략을 짜야 한다. 지원 전략에 따라 합격 여부가 갈리는 이런 시스템은 ‘실력’보다 ‘베팅’에 더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의 ‘레몬시장’(Market for Lemons) 이론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자는 차량 상태를 잘 알지만 구매자는 이를 알 수 없기에 정보가 불균형한 시장에서는 일부만 이득을 보고 대다수는 불리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입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불확실한 정보 속에서 전략을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교육 시장만 팽창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발전한 지금, 굳이 지원을 세 곳으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 가령,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10~20개 우선순위로 지원하고, 대학이 ‘성적과 희망 순위’에 따라 자동 선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학생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전략보다 실력에 기반한 공정한 선발이 이뤄질 수 있다. 대학도 복잡한 학생 유치 전략을 고민할 필요 없이 지원자의 성적과 선호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등록 포기와 추가 합격’의 연쇄적 반복에서 비롯되는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람들은 합리적 판단보다 감정적 선택을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정시 제도는 불확실성을 극대화해 학생들에게 실력보다 전략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교육이 본래 추구해야 할 가치와도 충돌한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수능 논술형 문항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 없이 시행되면 학교 현장에 더 큰 혼란과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선언적 개혁 의지보다 당장 과학적·합리적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이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베팅’이 아니라 ‘실력’이 당연한 기준이 되는 입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실력’이 아닌 ‘전략’이 성패를 좌우하는 현행 입시제도는

학생도 국가도 불행하다.

전략보다는 실력에 기반한 공정한 선발이 이뤄질 수 있는,

그래서 학생들이 본질적인 부분인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입시제도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래본다.

물론 일개 독서실 원장이 바랜다고 이루어지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줄서 독서실 스터디카페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천수로 52 .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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