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까까?

언제부턴가 스카 책상에 싸인펜으로 낙서가 되어 있다.

안 지워질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지워졌다.

처음엔 그려려니 했는데 횟수가 자꾸 늘어났다.

세번째 낙서가 발견되고 나서는 공지문을 붙여 놓았다.

요즘은 이런 범인들 찾는 게 별로 어렵지 않다.

독서실이나 스카 모든 방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을 뿐더러

전산상 모든 입출 로그 기록이 초단위로 기록되어 있기에

cctv와 로그기록, 이 두가지만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로그기록을 뒤져보니 한명으로 압축된다.

이름은 없고 전화번호 뒷자리로 입출하는

가끔씩, 일주일에 한번 정도씩 오는 스카 회원이다.

이젠 확인사살을 해야 하는 단계다.

원장실 책상 앞 메모지에 적어놓고

그 회원이 왔다가면 바로 그 자리에 가서 확인을 했다.

좌석번호와 입출 시간을 기재하고

낙서를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을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두번에 걸쳐 정확히 확인을 하였고,

사진도 찍어놓고 혹시 몰라 메모지에 일자도 기록해 두었다.

cctv까지 확인하면 내가 들인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 심리로

열이 받을 것 같아 그건 참았다. ^^.

주말인 14일,

오피스텔에서 점심을 먹고 ‘줄서 독서실&스터디카페’에

들어오는데 누군가 앞서 걷는데 뒷모습이 눈에 익다.

나보다 앞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나도 물티슈 박스를 들고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탈려고 하니

기다림 버튼을 눌러주면서 날 기다려준다.

그리고 3층을 누른다.

3층은 우리 ‘줄서 독서실&스티디카페’ 뿐이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힐끔 옆모습을 보니 눈에 익다.

누구지?

아!

누군지 떠올랐다.

바로 책상에 낙서하는 그 녀석이다.

같이 ‘줄서 독서실&스터디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잠깐 얘기좀 하자고 했더니 살짝 놀라는 눈치다.

“공부하기 힘들죠?”

“예”

“어디 학교 다녀요? 고3 이여요?”

“00고이고, 고2입니다”

얘기나누면서 자세히 보니 키는 좀 작은 편이지만

똘망똘망하니 생겼고, 피부가 깔끔하니 귀공자 스타일이다.

원래는,

“니가 책상에 낙서한 거 다 안다.

증거자료 이미 다 수집되었고,

손괴죄로 경찰서에 고소할까도 검토중이고,

만약 손괴행위가 인정되면 니네 학교에도,

교육청에도 통보할거다.

당연히 니네 부모님도 아시게 될거고”

“니가 아직 나이가 어리고 손해액이 미미하기에

금전적으로는 별 타격이 없겠지만 일단 고소가 되면

경찰서에 다니면서 조사도 받아야 하고

나중에 니네 학교와 교육청에도 통보가 되어

니가 대학교에 입학하는데

상당한 지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힘든건,

한창 공부해야 할 지금 이 시간에 경찰서, 교무실,

교육청 등에 불려다니느라 공부를 못한다는 거다.

그런 경험을 한번 해보고 싶냐?”

하면서 겁좀 주면서 혼좀 내줄려고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순진 무구한 고2일 뿐이다.

그래서 애둘러 얘기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학생이 책상에 낙서한 거 다 안다.

cctv도 확인했고, 입출 로그도 확인했다”

그러면서 메모지를 보여줬다.

“다행인건 낙서가 금방 지워졌다는 거다”

여기까지 얘기하자 뭐라고 얘기를 할려고 하는 걸

제지하고 내가 그냥 계속 얘기했다.

중간에 거짓말하면 내가 열 받을 것 같아서.

“공부하면서 스트레스 받겠지만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풀지 말고

푸드룸와서 음료수를 막 마시든지

과자를 막 먹던지, 아니면 나한테 와라.

그럼 내가 도와주마” 했더니,

고개를 꾸뻑 숙이면서 알았다고 한다.

착하고 순수한 고딩일 뿐이다.

순수하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준게 고마워서

책상에 과자를 하나 놓아 주었다.

솔직히 진짜로 고맙다.

부인하면서 박박 대들면 나도 열받아서 cctv 확인해야 하고,

고소장 작성해서 경찰서에,

진정서 작성해서 학교와 교육청에 제출하는 등 상당히 번거롭다.

물론 당사자야 나보다 오십배는 더 괴롭고 번거롭다.

증거가 부족하면 이런건 필적감정 하면 금방 나온다.

이정도 글씨체와 양이면 필적감정 비용도 50만원 안쪽이다.

감정을 하게 되면 내가 일단 비용을 지불하고

나중에 민사로 청구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인생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성질이 좀 더러버서,

한번 열받으면 중간에 멈추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와이프가 종종 그러곤 했다.

“당신은 1년동안 잘 하다가 한번에 다 까먹는다”고. ㅋㅋㅋ.

응징할지 말지는 심사숙고해서 하되

일단 응징을 시작하면 상대방 숨통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잘 멈추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예전 내 별명이 ‘집행관’이었다.

집행 하나는 확실히 한다고 해서. ㅋㅋㅋ.

이런일은 무엇보다도 별 가치도 없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여야 한다는 거다.

근데 그런 에너지 낭비하지 않도록

순순히 인정해 주고 ‘죄송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고개를 꺼뻑 숙여주니 서로 윈윈한 셈이다.

묵은 사건을 하나 해결했더니 속이 시원하다.

내일 토익 시험을 잘 볼려나…ㅋㅋㅋ.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고딩도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푸는 방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이 글은 지난 주말에 작성되었는데 순서에 밀려서 이제사 올린다.

근데, 묵은 사건 해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토익에 응시했는데

왜 시험이 그 모냥이었을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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